박물관 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출처] [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
[1] 천마도(天馬圖)장니
불뿜는 백마의 비상(飛上)… 비상(飛上)하는 신라의 꿈
한국 박물관의 역사는 1909년 순종이 세운 창경궁 제실박물관(帝室博物館)에서 시작된다. 국립중앙박물관(관장 최광식)은 9월 28일부터 11월 8일까지 《한국 박물관 개관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열고 전 세계에 흩어져 있는 한국 유물 120여점을 전시할 예정이다. 조선일보는 국립중앙박물관과 공동기획으로 이 특별전에 선보일 대표 유물을 소개하는 시리즈를 연재한다. 찬란한 우리 문화를 증언하는 명작들을 최고 전문가의 소개로 미리 만나본다.
[1] 천마도(天馬圖)장니
1973년 8월 23일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경주의 한 무덤에서 천마도(天馬圖)가 그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땅속에서 자그마치 1500여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유물은 장니(障泥), 즉 '말다래'였다.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등으로 만들어 말의 배 양쪽에 늘어뜨리는 승마의 부속 물건이다.
1973년 8월 23일 무더위가 막바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가운데 경주의 한 무덤에서 천마도(天馬圖)가 그려져 있는 신라시대 유물이 출토됐다. 땅속에서 자그마치 1500여년의 깊은 잠에서 깨어나 우리 눈앞에 모습을 드러낸 것이다. 이 유물은 장니(障泥), 즉 '말다래'였다. 말을 탄 사람의 옷에 흙이 튀지 않도록 가죽 등으로 만들어 말의 배 양쪽에 늘어뜨리는 승마의 부속 물건이다.
이 무덤이 발굴된 동기는 1971년 청와대에서 마련한 '경주 관광개발 10개년 계획'인데 경주 시내에 있는 신라시대 무덤 가운데 규모가 가장 큰 소위 98호 고분을 발굴하여 그 내부를 보여줘 관광자원으로 삼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큰 난관에 부딪혔다. 광복 후 당시까지만 해도 우리 손으로 거대한 신라무덤을 발굴한 경험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고민 끝에 같은 시대에 만들어진 보다 작은 무덤을 시험적으로 발굴조사하여 얻어진 노하우를 바탕으로 원래 의 목적을 달성하고자 한 것이다.
이 말다래에 그려진 천마 그림이 발견될 당시 하마터면 영원히 사라질 뻔했다. 그림이 그려진 바탕은 자작나무 껍질로 그 위에 바로 하늘을 날고 있는 말을 채색으로 그렸다. 유기물질로 만든 물건은 오랜 세월 땅속에 있게 되면 대부분 썩어 없어진다. 우연히 썩지 않고 발견돼도 햇볕과 공기를 쐬면 색이 바로 바래고 비단이나 천 같은 섬유물질은 재로 변해버린다. 그야말로 신기루처럼 아차 하는 순간 연기처럼 사라지고 마는 것이다.
그래서 천마도장니가 출토되자 곧바로 햇볕과 공기를 차단하고 응급처치를 한 후 국립박물관 보존처리실로 옮겼다. 박물관에서 온도와 습도를 유지하고 채색그림인 천마도가 손상되지 않도록 밀폐한 후 빛이 들어오지 않는 어두운 수장고에 보관했다. 발견 당시 어물어물했거나 도굴이 되었다면 우리는 이 천마의 그림을 영원히 볼 수 없게 되었을 것이다. 5~6세기에 만들어진 천마도는 불을 내뿜으며 하늘을 나는 백마의 기상을 매우 사실적으로 표현했다. 이 그림은 뻗어나가던 신라의 기상을 잘 나타내고 있을 뿐 아니라 현존하는 신라 최고의 그림으로 신라미술의 대표성을 갖고 있다.
그러나 유감스럽게도 무덤의 주인공을 알 수 있는 유물이 출토되지 않아 학술적인 이름을 마련해야 했다. 논의 끝에 천마총(天馬塚)으로 이름 지었다. 즉 '신라미술의 극치를 보여주는 천마의 그림이 출토된 큰 무덤'이란 이름을 붙인 것이다. 천마도장니(국보 207호)는 발굴된 이듬해인 1974년 10월 21일부터 12월 26일까지 출토 당시 응급 보존처리한 밀폐된 상태로 특별전을 통해 일반에게 공개됐다. 그 후 1998년 테마 전시 때 10여일간 하루 30여분씩 또 한 차례 공개했을 뿐인 이 귀중한 유물을 올해 우리나라 박물관 설립 100주년 기념 특별전을 통해 다시 만날 수 있게 된 것이다.
조유전 경기문화재연구원장·
전 경주고적발굴조사단장
직업 : 전문직업인(연구원)
학력 : 동아대 대학원 고고학 박사
단국대 대학원 고고학과 석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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