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23일 수요일

박물관 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7] 청자사자유개향로

박물관 100년 특별전 대표유물

국립중앙박물관·조선일보 공동기획

[출처] [한국문화, 그 찬란한 기억 ]

 

[7] 청자사자유개향로

천하제일 고려비색(翡色) 입은 사자의 포효…

 

[7] 천하제일 고려비색(翡色) 입은 사자의 포효
사자 한 마리가 향로 뚜껑 위에 웅크리고 앉아 있다. 입을 벌린 채 한쪽 무릎을 구부리고 앞을 보고 있는데, 목 뒤쪽과 엉덩이 부분에는 소용돌이 모양의 털이 표현돼 있고 꼬리를 위로 치켜들어 등에 붙이고 있다. 부리부리한 눈과 억센 주둥이, 더부룩한 갈기, 떡 벌어진 어깨, 강한 발톱은 실제보다 크게 강조돼 있고, 몸통은 작게 축소시켰다. 왜곡된 비례 때문에 사자는 작은 크기에도 매우 힘 있고 위엄 있게 느껴진다.
높이 21.3㎝, 지름 16.3㎝의 이 청자사자유개향로(靑磁獅子?M蓋香爐)는 고려청자의 전성기인 12세기에 만들어졌다. 향을 피우는 부분인 몸체와 사자 모양의 뚜껑으로 구성돼 있고, 몸체는 3개의 짐승 모양을 한 다리가 떠받치고 있다. 유약은 엷은 녹색을 띠며 맑고 투명하고 광택이 은은하다. 향로의 뚜껑 위에는 원앙새·오리 같은 현실세계의 동물이나 용·기린 같은 상상 속 동물이 앉는 경우가 많지만, 이처럼 주변을 압도하는 당당한 모습의 사자와는 비교할 수 없다.
이 청자향로는 원래 국립박물관 개성분관에 있던 것이다. 1946년 개성시립박물관을 국립박물관에 흡수통합해 문을 연 개성분관은 진홍섭 관장이 이곳을 고려문화의 정수를 소개하는 박물관으로 특화시키면서 고려청자를 대거 소장하게 됐다. 하지만 6·25 전쟁 발발 직전, 개성분관이 위태로워지면서 고려청자와 주요 유물을 황급히 서울로 옮겼고 개성분관은 문을 닫았다.

▲ 맨위는 단원유묵첩〉중 김홍도의 당호로 추정되는‘오수당’글씨. 두번째 사진은 덕수궁미술관 창고에서 이 서첩을 발견한 최순우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이 글씨를 특히 좋아해 편액으로 만들어 자신의 집 사랑에 걸었다. 명말청초 서예가 왕탁의 편지를 옮긴 부분은 끝에 단원의 출생연도를 밝히는 자료 가 들어 있다./국립중앙박물관 제공

 

고려의 사자향로는 1123년 북송(北宋) 황제의 사신으로 고려에 온 서긍(徐兢)의 눈에도 아주 특별해 보였다. 그는 '출장 보고서'인 《선화봉사고려도경(宣和奉使高麗圖經)》에 사자향로를 직접 보고 느낀 감동, 중국청자와 비교한 평가를 적었다. "사자향로[?s猊出香] 역시 비색(翡色)인데, 위에 엎드린 짐승이 있고 그 아래 연꽃이 받치고 있다. 여러 그릇 가운데 이것이 가장 뛰어나며, 나머지는 월주고비색(越州古秘色)과 여주신요기(汝州新窯器)와 대체로 유사하다." 높은 감식안을 가진 서긍이 사자향로를 중국 최고의 청자인 월주(越州)·여주(汝州) 자기보다 앞세우며 극찬을 보낸 것이다. 또 송나라 학자 태평노인이 쓴 《수중금(袖中錦)》은 "백자는 중국 정주(定州)백자가 천하제일이지만, 청자는 고려비색(秘色)이 천하제일(天下第一)"이라며 "그런 천하제일품을 다른 곳에서도 만들려 했지만 끝내 이르지 못했다[他處雖效之終不及]"고 적었다.
최근 서긍이 그려 간 사자향로의 연꽃받침을 연상시키는 유물이 중국 하남성 청량사 여요(汝窯)에서 발견되었다. 이 연꽃받침은 2005년 경기도자박물관의 《한국·중국 청자 비교전》에 출품되었는데, 색상과 질감 및 세련도에서 고려 것의 품위가 단연 높다는 쪽으로 한·중·일 전문가들의 의견이 일치했었다.
국보 60호인 이 '사자향로'가 서긍이 봤던 그 사자향로인지는 분명하지 않다. 그러나 고려의 비색청자로서 당대 최고 수준의 기법으로 만든 유물인 것은 틀림없다.
 
 
최건 경기도자박물관장
    직업 : 현)해강도자기박물관 학예연구실 실장

    학력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무형문화재분과위원회 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위원회 동산문화재분과 위원 

       (2009.4월 연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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