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8월 14일 금요일

대화를 잘 하는 12가지 스킬

1. 먼저 정확하게 자신을 소개하자.

마주보고 말하든 전화로 얘기하든 이름부터 밝히자.
"만나서 반갑습니다. 저는 ____ 입니다."혹은, "안녕하세요?
지금 전화하는 저는 ____ 입니다.".
처음 이야기를 시작할 때 "내가 지금 누구하고 얘기하는 거지?" 라는
생각만큼 본래의 의도에서 빗나가게 하는 요소도 없다.

2. 대화에 보탬이 되는 간결하고 정확한 손동작을 개발하자.

이것은 여성에게나 남성에게나 모두 필요하다.
우선 손을 활짝 펴서 호감을 표시하자.

3. 이름을 기억하자.

이것은 우리가 다른 사람에게 베풀어야 할 가장 중요한 예의이다.
누군가 가 자신을 소개할 때에는 주목하자. 그리고 곧 그의 이름을
불러주자.  "배용준씨, 만나서 반갑습니다."
혹시 이름을 정확히 알아듣지 못했을 때는,
"죄송합니다. 잘 못들었습니다."하자.  상대방은
자신의 이름을 알려고 하는 우리의 성실한 태도에 감사할 것이다.

4. 말을 할 때는 상대방과 눈을 마주치자.

그리고 다른 사람이 말할 때에도 그의 눈을 똑바로 쳐다보자.
눈을 마주치는 것은 우리가 말하는 내용에 대한 확신을 불러 일으켜줄 뿐 아니라 다른 사람의 말에 가치를 부여하고 있음을 나타내준다.

5. 늘 이런 태도를 지니자.

"나는 그녀가 나와 얘기하는 것을 좋아하도록 할거야."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는 말을 하자.
상대방이 관심을 기울이는 것에 대해 질문하자.
상대방이 자신을 표현하는 것을 도와 주자.
아마 그들은 우리와 얘기 하기를 좋아하게 될 것이다.

6. 적극적으로 말하자.

행복한 표정은 보는 사람도 기분 좋다.
우리가 일하면서, 생활하면서 얻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자.
그렇게 하면 모두들 우리와 친해지고 싶어할 것이다.
불평이나 비난의 말은 삼가자.(속으론 그러고 싶더라도 참자.)
부정적인 말은 듣는 사람도 슬프게 한다. 그들은 이미
그들 자신의 고민은 지니고 있다. -- 우리의 고민까지 짊어지게 하지 말자.

7. 신중하게 듣자.

그들이 하는 말 중에는 다른 사람에게 전달되지 않기를 바라는
내용도 있다.
그들에게 신뢰할 수 있는 믿음을 주자.
그들은 그런 우리와 얘기하면서 편안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8. 이기적인 태도보다는 상대방을 도우려는 태도로 대화하자.

다른 사람의 생각에 관심을 보이자.
자기 주장을 내세우지 말자.
우리가 진심으로 그들의 생각에 관심을 기울이면 그들에게도 그 마음이 전달되는 법이다. 물론 그들이 느끼는 신뢰도 우리에게 되돌아온다.
거꾸로 자신의 관심거리로만 생각이 꽉 차있는 사람이라는 느낌을 상대에게 준다면 그들은 우리와 대화하는 것을 불편하게 여길 것이다.

9. 상대방에게 중요한 사람이라는 느낌을 심어주자.

이것은 그들에게 모든 관심을 기울이기만 하면 되는 일이다.
지금 이 순간에는 그의 혹은 그녀의 일과 고민, 문제점만이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처럼 행동하자.
예전에 알았던 그들의 사정에도 관심을보이자.
그렇게 한다면 우리는 기억력 좋고,따스하고,믿음직스런 대화 상대로 존경받게 될 것이다.

10. 상대방의 말을 충분히 이해했다는 확신을 주자.

일하면서 가장 골치를 썩이는 것도 바로 "오해" 이다.
잘못 해석하고 잘못 이해한 데서 비롯되는 오해가 다른 어떤 이유보다 우리를 속상하게 한다.
상대방이 한 말을 우리 자신의 언어로 반복하면서 확실히 이해하자. 그리고 그들에게 확실히 이해했는지의 여부를 확인하자. 그러면 그들은이해받은 사실을 고마워할 것이고 이해하려는 우리의 노력에 감동할 것이다.

11. 회의나 약속은 시간을 꼭 지키자.

지각은 "이 일은 나한테 중요하지 않다"는 말을 행동으로 보이는 것이다.
피치못할 사정으로 늦게 될 경우에는 미리 전화하자.
늦는 이유를 솔직히 설명하고 언제쯤 도착할지를 정확히 밝히자.
늦게 도착해서 놀라게 하기보다는 미리 전화하는 우리의 사려깊은 배려에 그들은 호감을 느낄 것 이다.

12. 다른 사람의 입장을 먼저 생각하자.

그들이 무엇을 원하는지, 그리고 우리와 무엇이 다른지를 알고 받아들이려고 애쓰자.
그들의 시선으로 세상을 보려고 노력하자. 그리고 그들이 생각하는 대로 나를 생각하려고 노력해 보자.
"어떻게 하면 내가 한 일에 내 상사가 만족할까?"
어떻게 해야 다른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는지를 깨닫는다면 우리는 지금보다 훨씬 훌륭한 대화를 할 수 있을 것이다.


훌륭한 대화를 하기 위한 비결은 다른 사람을 우리 곁으로 가까이 다가오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은 상대방에게 자신의 가치를 느끼게 해주는 것이다. 가치있는 존재라는 느낌과 중요한 존재라는 느낌은 인간이라면 누구나 갖고 싶어 한다. "가치있고 중요한"것이 바로 우리 인간의 본질이다. 자신을 열고, 힘을 합쳐서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일을 할 준비를 할 것이다.

자신의 가치를 인정해 준 우리를 신뢰하는 것은 물론이다.열린 마음으로 서로 신뢰하면서 힘을 합치는 것보다 더 즐거운 유대관계는 없다. 우리의 열정과 자신감 그리고 힘을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자. 그러면 곧 우리와 일하는 즐거움을 함께 나누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자신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역사를 먼저 살다 간 9인의 지혜

운도 지지리 없는 놈이라고 하늘의 무심함을 탓하지 말라!
내가 수십년간 낚시를 벗하며 때를 기다리는 동안 조강지처마저 나를 버리고 도망가 버렸다. 검은 머리가 백발이 되고서야 문왕 서백을 만나 은나라 주왕(紂王)을 멸하고 주나라를 세웠다. 나는 숱한 세월을 낚으며 늙은이가 되었지만 결코 하늘을 원망하거나 포기않았고 그 인내의 결실이었던 단 한번의 기회로도 천하를 얻을 수 있었다.
------------------------------------> 주나라 태공망 강태공(姜太公)

용모가 볼품없어서 되는 일이 없다고 푸념하지 말라!
나는 어렸을때 보잘것 없는 외모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지사이를 기어건너는 치욕을 당했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나의 볼품없는 용모를 업신여겨 범증의 천거를 번번히 거부하며 십년간이나 말단벼슬아치 집극랑자리를 맴돌게했다.
항우에게 실망하고 유방 밑으로 들어갔으나 연전연승하며 '해하'에서 항우를 완전히 섬멸하고 천하를 유방에게 안겨줄때까지 갖은 수모를 견뎌내야했다. 나는 초라하기 짝이없는 몰골뒤로 천하웅비의 뜻을 감추고 뭇사람들의 갖은 야유와 모욕을 참아내며 기어코 전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 한나라 회음후 한신(韓信)

한때 자존심과 명예를 짖밟힌 치욕을 당했다고 생(生)을 포기하지 말라!
나는 벗 이릉장군을 변호하다 무황제의 노여움을 사서 생식기가 짤리는 궁형의 치욕을 당하고도 목숨을 부지하였다. 당시 궁형의 수치를 못참고 자살하는 者가 많았으나 죽음이 두려워서가 아니라 못다 이룬 역사적 사명을 다하기 위하여 죽음을 선택할 수가 없었다.
나는 거세된 남자가 모진 생명을 질기게 끌고간다는 온갖 조롱을 참아내며 옥중에서도 저술을 계속하여 마침내 <사기> 완성한 불세출의 역사가가 되었다.
---------------------------------> 중국최고의 역사가 사마천(司馬遷)
여자로 태어나서 하고픈 일을 못한다고 얼고만 있지 말라!
나는 아버지 무사확의 후처소생 둘째딸로 태어나 갓 14살때 최말단후궁 재인이 되어 당태종 이세민을 가무로써 섬겼다. 황궁생활초기 나의 경쟁자는 여자였으나 비구니로 물러앉았다가 태종의 아들 고종의 총애를 받으며 황궁으로 돌아와 4명의 아들과 2명의 딸을 생산하며 황후가 된 후 부터 나는 남자들과 힘겨운 전쟁을 시작했다. 장손 무기를 내쳤고 상관의를 처형하였으며 심지어 나의 4명의 아들마저 차례로 버렸다.
내 나이 67살..
여자든 남자든 아무도 도전할 수 없는 철옹성을 만들고나서 역사상 전무후무한 여제(女帝) 성신황제(聖神皇帝)가 되어 15년간 천하를 다스렸다.
--------------------------> 당나라 여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

집안배경이 나빠서 요모양 요꼴이 되었다고 변명하지 말라!
나는 오랑캐의 나라 원대말기 안휘성의 빈농 한족집안에서 태어나 17살에 고아가 되어 탁발승으로서 가믐과 기근에 찌든 험악한 세상과 맞서야 했고 전란통에 비적 무리의 일개 졸개가 되었을때 아무도 나를 알아주는 이가 없었다. 그후 혁혁한 전과를 올린 공으로 반란군의 2인자가 되어 원나라 몽골군을 중원에서 몰아낸 후에도 양반사대부집안의 멸시와 견제속에서 시달려야했다. 나는 송곳하나 꼿을 땅이 없었던 빈농집안에서 태어났지만 고아가 되었을때 조차 부모를 원망하지 않았으며 결국 몽골오랑캐를 몰아내고 한족(漢族)천하를 회복한 명나라의 초대창업황제가 되었다.
-------------------------------> 명나라 태조 홍무제 주원장(朱元璋)

나이가 어리다고 어미의 치마폭 뒤에 숨어 칭얼거리지 말라!
나는 8살때 황제가 되었고 13살때 결혼을 했으며 14살때부터 스스로 친정(親政)을 시작했다.
응석을 부릴 겨를도 없이 오삼계,상가희,경계무의 삼번난(三藩亂)을 제압하고 몽고를 평정했으며 티베트까지 원정했다. 나는 어린 나이의 어리광도 모른채 군주가 되어 61년간 천하를 호령할 수 있었다.
---------------------------------> 청나라 제4대 황제 강희제(康熙帝)

돈이 없어서 재기할 수 없다고 낙담하지 말라!
나는 미천한 집안에 태어나 아버지가 일찍 죽는 바람에 학업도 못마치고 전장(錢庄)에 들어가 똥오줌을 치우고 마루를 닦으며 잔신부름으로 어린시절을 보냈다. 빈손으로 사업을 일으켰고 다시 빈털털이가 되는 과정을 겪고 또 겪었지만 내가 살아있는 한 아무리 빈손이라도 언제든지 사업을 다시 일으켜 세울 수 있다고 믿었다. 나는 한푼도 가진게 없는 가운데도 스스로의 재기를 믿었고 내게 없는 것을 메꾸어주는 인재를 대함에 귀천을 가리지 않았다. 큰 상인이 되는데 돈 보다는 사람이 더욱 소중함을 일찍이 깨달았던 나는 부와 명예를 모두 거머쥔 장사의 신 "상성(商聖)"이 되었다.
--------------------------------------> 청대말 거상 호설암(湖雪巖)

만년 2인자라고 보스자리에 대한 욕심으로 자신의 직분을 망각하지 말라!
나는 1935년 준의회의에서 모택동을 모시고 만리장정을 따라나선 때부터 죽는 그날까지 41년동안 2인자의 길을 묵묵히 걸었다.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공산당초기 탑리더의 코스를 밟던 내가 가난한 농부의 아들 모택동을 중국혁명의 지도자로 추천하고 스스로를 낮췄던 것은 인민의 마음을 움직이는 호소력이 그에게 있음을 알았기때문이었다.
총리시절 행정보고를 함에 모주석의 침상옆에 꿇어 앉아야했고 방광암수술을 받고싶어도 毛의 허락이 떨어지지않아 수술을 2년간이나 미루어야했다. 방광암으로 죽어가는 초읽기의 시간속에서도 미일과의 수교, 문화대혁명의 폐허속에 놓인 국가경제재건, 등소평을 재신임하는 권력의 재편성을 위해 촌음을 다투었다.
나는 사망하는 순간에도 "다 죽어가는 나따위는 돌보지말고 다른 아픈 동지들을 돌보시오"라는 유언을 남기며 인민의 마음속에서 영원한 1인자, 인민의 벗으로 다시 태어났다.
------------------------------> 중화인민공화국 총리 주은래(周恩來)

잘나가다 넘어지고 재기했다 다시 쓰러진다고 괴로워하지 말라!
나는 문화대혁명때 반모주자파로 몰려 홍위병으로 부터 공개비판을 당했고, 잠시 일어났지만 하방당하여 강서성의 한 공장에서 4년간을 육체노동자로 버텨야했다.
주은래 총리의 도움으로 복권되어 국무원 부총리로 재기했다가 4인방의 농간에 또 다시 실각하고 가택연금까지 당해야했지만 모택동사후 정국수습용으로 재기용된 후 화국봉과의 5년 권력투쟁끝에 최고실권을 장악했다.
나는 세번 쓰러지고 네번 일어난 역전의 용사로서 마지막 정치적 위기였던 천안문사태의 시련을 견뎌내고 아무리 넘어져도 다시 일어나는 오뚜기 부도웅 개혁개방의 총설계사가 되었다.
-------------------------------> 중화인민공화국 주석 등소평(登小平)

대법원이 제시한 호적 관계 변화에 대한 질문과 답변 사례.

◇개인별 가족관계등록부 작성
 
-내년부터 시행되는 `가족관계등록부'는 현행 호적과 어떤 점이 다른가.
▲현행 호적은 호주와 그 가족들로 구성돼 있고 그 가족들의 신분에 관한 모든 사항이 기재돼 있다. 그러나 내년부터 시행될 새로운 제도에 따르면 호적상의 호주 및 가족들을 개인별로 나누고 한 사람마다 하나의 가족관계등록부가 작성된다.
가족관계등록부에는 가족관계에 관한 것, 기본적 신분사항에 관한 것(출생, 국적 관련, 친권, 한정치산, 금치산, 친생부인, 개명 등), 혼인에 관한 것, 입양에 관한 것, 친양자 입양에 관한 것 등이 기록된다.
다만 이에 대한 증명서를 발급할 때에는 증명대상에 따라 가족관계증명서, 기본증명서, 혼인관계증명서, 입양관계증명서, 친양자입양관계증명서 등 5종류로 나누어 증명해 줌으로써 개인의 개인정보 보호를 강화했다.
한편 가족관계증명서에 나타나는 가족관계 사항은 현행 호적등본과 달리 본인의 부모, 배우자 및 자녀의 3대에 한하고 그들의 이름, 생년월일 등 가족관계 특정에 필요한 사항으로 한정된다. 가족들의 자세한 신분사항은 가족 개개인의 가족관계등록부를 통해서만 확인할 수 있다.
 
-가족관계등록부는 무엇을 기초로 만들어지나.
▲가족관계등록부는 현행 전산호적에 기재돼 있는 신분사항에 관한 기재 내용을 기초로 작성된다. 따라서 현재 호적이 작성돼 있는 모든 사람은 별도로 신고할 필요 없이 전산시스템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게 된다.
다만 2008년 1월1일 이후에 태어난 사람은 호적이 없으므로 출생신고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가 새로 작성된다.
 
-만약 2007년 12월31일 태어난 사람에 대해 호적이 폐지되는 2008년 1월1일에 출생신고를 하면 호적에 기재됨이 없이 바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게 되나.
▲그렇다. 출생신고시를 기준으로 작성되므로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해야 한다.
◇본적 폐지.등록기준지 개념 도입
 
-내년부터 본적이 없어지나.
▲그렇다. 가족들은 모두 호주의 본적을 따라야 하는 현행 호적과는 달리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부에는 등록하고 싶은 장소를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는 `등록기준지' 제도가 시행되고, 본적 제도는 없어진다.
등록기준지는 개인별로 정해지므로 같은 가족이라도 등록기준지를 달리할 수 있고, 그 변경도 자유롭다.
 
-가족관계등록부의 등록기준지는 누가 정하나. 신고지, 현재지, 주소지 등과 같이 신고인이 임의로 정할 수 있나.
▲그렇다. 신고인이 임의로 정할 수 있다. 현재 호적이 있는 사람의 최초 등록기준지는 그 호적의 본적지가 되고 이를 아무런 제한 없이 변경할 수 없다.
참고로 2008년 1월1일 이후 출생신고를 하는 경우에는 신고인이 임의로 등록기준지를 정하거나 부 또는 모의 등록기준지로 정해 신고할 수 있다.
◇증명서 교부청구권자 및 교부사유 제한
 
-현재는 자신의 호적이 아니라도 본적만 알고 있으면 부당한 목적이 없는 한 누구나 다른 사람의 호적등초본을 발급받을 수 있다고 하는데 내년에도 그런가.
▲원칙적으로 본인과 그 가족만이 발급권자다. 2008년부터 제적등본과 가족관계등록부의 각 증명서 발급요건이 현행보다 엄격해 진다.
가족관계등록부의 각 증명서는 본인, 직계존속, 직계비속, 배우자, 형제자매의 경우에만 발급받을 수 있다. 제3자는 법률에서 특별히 허용한 경우를 제외하고는 발급권자들의 위임을 받아야 발급이 가능하다.
 
-새로운 증명서를 발급받기 위해 무엇을 알아야 하나.
▲현행 본적 대신 성명과 주민등록번호 또는 생년월일을 사용하게 된다.
◇다양한 목적별 증명서 발급
 
-가족관계등록부에는 이혼 경력이 기재되나.
▲현행 호적등본을 대체할 기본증명서,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나타나지 않는다. 다만 혼인관계증명서에는 이혼 경력이 나타난다.
가족관계등록정보를 증명하는 5종류의 증명서 중에는 배우자가 나타나는 증명서는 가족관계증명서와 혼인관계증명서다.
그중 가족관계증명서에는 현재 유효한 혼인 중인 배우자만 나타나고, 이혼 또는 혼인 무효.취소된 배우자는 나타나지 않는다. 그러나 혼인관계증명서에는 혼인 및 이혼에 관한 사항을 증명하도록 하고 있기 때문에 이혼 경력이 기재된다.
 
-가족관계등록부로 형제자매를 확인하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 확인할 수 있다.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배우자와 본인을 기준으로 부모.자녀의 3대만 표시되고 형제자매가 나타나지 않는다. 따라서 형제자매를 알려면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발급받아야 비로소 그 자녀로 표시된 본인과 그 형제자매를 확인할 수 있다.
다만 가족관계등록부는 현행 호적전산자료를 기초로 만들어지는데 형제자매가 이미 결혼 등을 이유로 분가해 독립된 호적을 갖게 된 때에는 부모의 호적에 나타나지 않으므로 이를 기초로 작성된 부모의 가족관계증명서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없는 경우가 있을 수 있다.
이러한 경우에는 제적등본을 발급받거나 형제자매의 가족관계증명서와 본인의 가족관계증명서를 따로 발급받아 부모의 동일함을 증명하는 방법으로 확인해야 한다.
 
-본인은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 전체 기록내용을 하나의 증명서로 발급받을 수 있나. 아니면 각 증명서를 각각 발급받아야 하나.
▲증명목적에 따라 그에 적합한 증명서를 발급받아야 한다. 본인이라고 하더라도 가족관계등록정보 전체를 볼 수 있는 전부증명서는 법에서 허용하지 않고 있다. 전부증명서를 허용한다면 개인의 사생활정보를 보호하기 위해 5종류의 목적별 증명서를 도입한 제도적 취지가 퇴색되기 때문이다.
본인이라 하더라도 증명목적에 따라 필요한 해당 증명서를 각각 발급받아야 한다.
 
-얼마 전에 여동생이 이혼하고 아버지 호적에 복적을 했다. 현재 저는 미혼이고 입사지원을 하고 있다. 호적등본 제출시에 여동생의 이혼사실이 나타나 불이익이 없을지 걱정이 된다. 새로운 가족관계등록부에도 여동생의 이혼사실이 나타나나.
▲나타나지 않는다. 개인별 편제방식을 취하는 가족관계등록제도가 시행되면 이혼한 여동생이 복적한 아버지의 호적은 모두 제적되고 여동생은 이혼사실은 여동생의 가족관계등록부에만 나타난다.
또 귀하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부모.배우자.자녀만 나타나기 때문에 여동생에 관한 어떤 사항도 나타나지 않는다.
한편 내년부터는 여자가 이혼을 하더라도 자신의 가족관계등록부에만 이혼사실이 기재될 뿐 친정 아버지 호적에 다시 등재되지 않게 된다.
 
-저는 어렸을 때 입양돼 양부모님에게서 자랐다. 양부모님은 저를 친아들처럼 잘 길러 주셨고 저 역시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열심히 공부해 대학을 우수한 성적으로 졸업했다. 그러나 입사 지원시 제출하는 호적등본 때문에 여러 곳에 입양사실이 알려져 곤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사실이 드러나지 않게 하는 방법은 없나.
▲가족관계증명서와 입양관계증명서를 통해 입양사실이 나타난다. 2008년부터 시행되는 가족관계등록부의 목적별 증명서는 현행 호적과는 달리 모든 가족의 신분사항이 공개되지 않도록 그 증명 목적에 따라 증명서를 발급하도록 돼 있다.
그중 본인의 신분사항만이 나타나는 기본증명서에는 일반입양사실이 표시되지 않지만 가족관계증명서와 입양관계증명서에는 양부모가 표시돼 입양사실이 나타난다.
한편 친양자 입양은 일반 입양과 달리 가족관계증명서에 양부모가 친부모처럼 표시되나 친양자가 될 자가 15세 미만이어야 하기 때문에 귀하는 친양자가 될 수 없다.
◇본적지 처리 폐지
 
-내년부터는 본적이 서울인 사람도 신혼여행지인 제주도에서 혼인신고를 하고 바로 혼인관계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나.
▲그렇다. 혼인신고를 하고 증명서를 발급받을 수 있다. 현재는 본적지 시.구.읍.면의 장이 혼인신고에 따른 호적업무를 담당하므로, 혼인신고지와 본적지가 다른 경우에 신고지 담당공무원은 직접 처리하지 않고 본적지로 신고서를 송부해야 한다. 따라서 혼인신고사항이 기재된 호적을 발급받기 위해서는 약 1~2주의 기간이 걸렸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신고지 담당공무원이 등록기준지로 신고서를 송부하지 않고 직접 심사해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할 수 있다.
이에 따라 서울에 등록기준지를 둔 사람이 제주도에 신혼여행을 가서 서귀포시청에 혼인신고를 하면 혼인 요건이 충족됐을 경우 바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이 돼 즉시 혼인관계증명서의 발급이 가능하게 된다.
◇혼인신고 등 당사자 불출석시 신고요건 강화
 
-내년부터는 양쪽 혼인당사자가 직접 혼인신고를 해야 하나.
▲한쪽 혼인당사자가 신고하는 경우에는 불출석한 혼인당사자의 신분증 또는 인감증명서를 가져가야 한다. 현행 호적법에서는 마음만 먹으면 다른 사람의 승낙 없이 그 인장을 위조해 혼인신고서를 작성해 제출함으로써 혼인신고를 할 수 있다. 이 같은 신고절차의 허점 때문에 주위에서 이를 악용한 피해사례가 자주 발생했다.
이를 방지하기 위해 내년부터는 한쪽 혼인당사자가 혼인신고를 하는 경우에는 불출석한 혼인 당사자의 의사를 확인하기 위한 방법으로 그 신분증을 제시하거나 인감증명서를 첨부해야 하고 그러하지 않은 경우에는 혼인신고를 수리하지 못하도록 했다.
◇국적통보에 의한 가족관계등록부의 작성
 
-저는 조석족으로 한국인 남편과 혼인해 현재 한국에서 살고 있다. 내년 쯤에 간이귀화를 해 정식으로 한국국적을 취득하려고 하는데 내년부터는 귀화허가를 받은 후 따로 귀화신고를 할 필요가 없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현행 호적법에 따르면 법무부장관의 귀화허가를 받은 사람은 귀화하거서와 친족관계를 소명하는 자료 등을 첨부해 호적관서에 별도로 신고를 해야 호적이 작성된다.
그러나 내년부터는 법무부장관이 해당 등록관서에 귀화허가자의 등록부 작성에 필요한 사항을 통보하면 등록관서가 직접 귀화자의 가족관계등록부를 작성하게 되므로 별도의 신고가 필요 없게 된다. 이러한 국적취득통보제도는 인지에 따른 국적취득, 귀화, 국적회복, 국적판정 등의 경우에도 동일하게 적용된다.
다만 제도 시행에 준비가 필요하므로 오는 2008년 9월1일부터 시행된다.
◇국적회복 허가시 종전 성과 본의 계속 사용
 
-저는 한국인으로 호적이 작성돼 살다가 국적을 상실해 외국국적으로 살았다. 그후 다시 한국 국적을 회복하고자 국적회복신청을 하려고 한다. 국적회복허가에 의해 가족관계등록부를 만들 때 새로 성과 본을 창설하지 않고 종전의 성과 본을 그대로 사용할 수는 없나.
▲사용할 수 있다. 종전의 성과 본을 소명한 경우에는 새로 성과 본을 창설하지 않고 종전의 성과 본을 그대로 사용할 수 있다.
◇친양자 제도 시행
 
-내년부터 시행되는 친양자제도는 어떤 제도인가.
▲친양자제도는 자녀의 복리를 위해 양자를 적어도 법률상 완전한 친생자로 인정하는 제도다. 따라서 친양자로 입양되면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 및 상속관계는 모두 종료되고 양부모와의 법률상 친생자관계를 새롭게 형성하며, 성과 본도 양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다.
친양자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친양자가 될 자가 15세 미만이고 그 친생부모의 입양 동의를 얻어 반드시 가정법원의 친양자 입양 재판을 거쳐야 한다. 한편 일반 입양과 달리 혐의상 파양을 할 수 없고 엄격한 제한 요건 하에서 재판상 파양을 할 수 있을 뿐이다.
 
-전남편과 이혼해 그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친할머니가 기르고 있다. 저는 재혼을 준비하고 있는데 이 아이를 새 남편될 사람이 친양자 입양을 하려고 한다. 친권은 저에게 있는데 전남편이 사망한 경우 누구의 동의를 얻어야 하나.
▲어머니의 동의만 있으면 된다. 친양자 입양은 친양자가 될 자의 친생부모의 입양동의를 얻어야 한다. 그런데 이혼해 자녀를 양육하고 있는 중에 전남편이 사망한 후 재혼해 새남편이 친양자 입양을 하는 경우에는 어머니의 동의만 있으면 가능하다.
 
-일반 입양과 친양자 입양은 어떤 차이가 있나.
▲친양자는 혼인 중의 출생자로 보아 친생부모와 친족관계가 모두 소멸되며, 입양제도와 달리 성과 본의 변경이 가능하고 재판상 파양만 인정된다.
일반 입양은 협의로 이뤄지는 반면 친양자 입양은 재판을 거쳐야 하고 친생부의 성과 본을 유지해야 하는 일반 입양과 달리 친양자 입양은 양부의 성과 본으로 바꿀 수 있다. 단 일반 입양은 친생부모와의 관계를 유지하는 반면 친양자 입양은 그 관계의 단절을 강제한다.
일반 입양은 입양시부터 혼인중의 자로 간주되지만 친생부모와의 관계에서도 친권을 제외하고는 변함이 없다. 친양자 입양은 재판확정시부터 혼인중의 자로 간주되며 동시에 친생부모와의 법적인 관계가 모두 종료된다.
 
-친양자로 입양한 자녀가 입양사실을 알게 될까 걱정이다. 친양자임이 공개될 경우 친양자 제도의 취지상 친양자 본인에게 바람직하지 않을 것 같은데 이에 대한 대책은 없나.
▲친양자 입양은 양자의 성과 본까지 변경해 법률상 완전한 친생자관계를 형성하고 친양자 입양사실을 원칙적으로 공개하지 않으므로 다른 증명서와 달리 가족은 물론 본인도 발급이 제한된다.
친양자 입양 관계 증명서는 친양자 본인이 성년이 되거나 혼인당사자가 혼인의 무효 또는 취소사유에 해당하는 친족관계를 파악하고자 하는 경우 법원의 사실조회촉탁이나 수사기관의 수사목적으로 신청한 경우에 한해 예외적으로 발급할 수 있다.
 
-양부가 양자를 친양자로 입양할 수 있나
▲그렇다. 친양자 입양을 할 수 있다. 일반 입양의 요건과 친양자 입양의 요건은 모두 친생부모의 동의를 받아야 하는데 친양자 입양의 요건은 일반 입양의 요건보다 엄격하고 가정법원의 입양재판을 거쳐야 하기 때문에 보통양자를 친양자로 입양할 수 있다.
그러나 양부모 이외의 사람이 다른 사람의 보통양자인 자를 친양자 입양하려면 친생부모와 양부모의 동의를 모두 받아야 한다.
 
-친양자 입양을 한 후 친생부모가 아이를 너무 보고 싶어 할 경우 면접교섭권이 인정되나.
▲면접교섭권은 인정되지 않는다. 친양자 입양이 확정되면 종래의 친족관계는 종료되기 때문에 친생부모의 면접교섭권은 인정될 수 없다.
친생부모의 면접교섭권을 인정하게 되면 친양자로 하여금 양부모를 유일의 친부모처럼 여기고 정서적으로 건전한 성장할 수 있게 한다는 친양자 제도의 취지에 반하기 때문이다.
◇혼인신고시 모의 성과 본 따르기로 하는 제도 신설
 
-내년부터는 혼인신고시에 자녀의 상과 본을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미리 정할 수 있다고 하는데 사실인가.
▲그렇다. 원칙적으로 자녀의 성과 본은 부의 성과 본을 따르되 예외적으로 혼인신고시에 장차 태어날 자녀의 성과 본에 대해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서로 협의하면 자녀에 대한 출생신고를 할 경우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가족관계등록부에 기록하게 된다.
다만 어머니의 성과 본을 따르기로 하는 협의 없이 혼인신고를 한 후에는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다.
◇성과 본 변경 제도 신설
 
-혼인관계 중 아버지의 성과 본을 따르고 있는 자녀의 성과 본을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나.
▲법원의 허가를 받아야 어머니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있다. 기존의 성과 본을 변경하는 것은 개인적.사회적으로 기존의 성.본에 의해 형성된 사회적.법적 신뢰관계를 흔드는 결과가 될 수 있으므로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한 때에만 법원의 허가를 받아 변경할 수 있다.
이 규정의 입법취지는 이혼율이 급증하고 재혼가정이 증가하고 있는 현실에서 자녀가 이혼 또는 재혼한 어머니와 함께 생활하고 있는 경우가 많은데, 현행 가족법상 성불변의 원칙 때문에 이러한 자녀가 겪고 있는 현실적인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신설된 것이다.
따라서 성년자이거나 정상적인 가정을 유지하고 있는 부모의 자녀 등의 경우에는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그 변경이 어려울 것이다.
 
-협의이혼을 하려고 하는데 남편이 내년부터 엄마의 성이나 새 아빠의 성으로 변경이 가능하다고 하면서 아들의 양육비나 친권에 대해 협의를 하지 않았다. 엄마의 성이나 제가 재혼하는 새 아빠의 성으로 변경한다고 친자관계에 큰 영향을 주나.
▲그렇지 않다. 단순히 자녀의 성을 변경하는 것만으로는 친생부모와의 친족관계에 변동을 가져오는 것은 아니므로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는 성의 변경으로 인해 친아빠의 성과 다르게 됐더라도 여전히 친아빠가 부로 표시된다.
따라서 자녀의 가족관계증명서에 새 아빠를 부로 표시하려면 재혼할 친양자 입양을 해 친아빠와의 친족관계를 종료시켜야 한다.
 
-저는 이혼한 여성인데 전 남편과 사이에 태어난 자녀를 기르고 있다. 이 자녀의 성과 본을 새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할 수 없나.
▲변경할 수 있다. 자녀의 성과 본을 새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하는 방법에는 다음과 같은 두 가지가 있다. 첫째는 가정법원에 성과 본의 변경허가를 청구하는 것이다. 법원은 자녀의 복리를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한 때에는 새 아버지의 성과 본으로 변경하는 결정을 내리게 된다.
둘째는 새 아버지가 자녀를 친양자로 입양해 그 성과 본을 변경할 수 있다. 다만 친양자 입양을 하기 위해서는 친양자가 될 자가 15세 미만이고 그 친생부의 입양 동의를 얻어 가정법원의 친양자 입양재판을 거쳐야 한다.

회의실에 앉은 자리가 성격을 말한다

리더 오른쪽은 ‘예스맨’ 리더 맞은편은 ‘반대파’
자리’가 그 사람을 말해 준다.

조직 내에서의 보직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바로 회의 시간에 어느 좌석에 앉느냐는 것이 그 사람의 성격을 나타낸다”고 미 경제주간지 비즈니스 위크 최신호(23일자)가 분석했다.


 
 
수십 개 대기업에 속한 4만여 명의 직원을 직접 인터뷰해 온 임상심리학자 샤론 리빙스턴(Livingston)에 따르면, 회의 시간에 앉는 자리에 따라 그 사람의 태도와 심리를 7개 유형으로 나눌 수 있다〈그림 참조〉. 이를 통해 왜 사람들이 회의 때마다 늘 같은 자리에 앉는 경향이 있는지 설명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리더는 늘 회의실 깊숙이 출입구를 향해 앉고, 그의 오른편에는 리더의 지시에 순응적인 ‘예스맨(yes-man)’이, 리더를 마주 대하는 탁자 건너편 의자에는 리더의 반대파가 앉는 경향이 있다고 한다.

중국어 입문하기 위한 방법

중국어 입문하기 위한 방법
영어 열풍에 이어 중국어 열풍이 불고 있다. 중국과의 교류가 확대되면서 비즈니스에 필요한 중국어 회화를 공부하는 직장인 외에도 제2외국어로 중국어를 공부하는 초중고교생들이 늘고 있다.

특히 방학을 앞두고 중국어 공인성적을 얻기 위해 인정시험을 준비하는 학생들도 많다. 중국어를 배울 수 방법과 인정시험 등에 대해 알아본다.

중국어를 배울 수 있는 방법으로는 학습지, 학원, 원어민 과외, 인터넷 강의 등이 있다.

가장 손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중국어 학습지다. 학습지 진도와 병행해서 교사들이 1주일에 한두 번 방문해 직접 지도해 준다. 대표적인 중국어학습지로는 차이홍중국어, 재능중국어, 구몬중국어, 호와와중국어교실 등이 있다.

수준에 맞춰 학습지 진도가 나가기 때문에 초보자가 시작하기에 좋은 방법이다.

중국어를 본격적으로 배우고 싶다면 중국어 학원을 다니는 것도 추천할 만하다. 특히 유아나 초등학생의 경우 주니어 전문 중국어학원을 활용하면 된다.

핑핑팡어린이중국어학원은 유아부, 유치부, 초등부로 나눠 수업을 진행한다.

라이라이중국어도 어린이 및 주니어전문학원을 운영 중이다. 성인 대상 어학원에서도 초중고교생들의 중국어 수요가 늘어나자 학생반을 만들어서 운영하고 있다.

인터넷 강의는 집에서 손쉽게 중국어를 배울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온라인중등교육사이트 메가스터디 엠베스트는 최근 중국어 자격증 대비를 위한 중국어능력시험(HSK) 강좌를 오픈했다.

HSK 4∼6급에 대비할 수 있는 수준으로 HSK에 입문하는 학습자를 위한 기초 어법 특강과 실전 모의고사 문제 풀이 강좌를 제공한다.

○ 많은 시험을 접해 보라

시험이라는 것은 유형이 있기 마련이다. 종합적인 언어능력을 평가하고 측정하는 시험이지만 시험의 종류가 다르듯 유형도 다르기 마련이다.

국내에서의 외국어 학습은 실용성에 중점을 많이 두고 있다. 그러나 시험에서는 어법에 대해 많이 묻고 있으므로 시험을 준비하면 어법 공부도 할 수 있다.

특히 중국 유학을 고려하고 있다면 독해나 쓰기 영역 대비도 필요하다. 독해나 쓰기를 제대로 하려면 어법 공부는 필수. 시험 준비를 하면서 이 부분에 대한 공부도 틈틈이 할 필요가 있다.

○ 굳어진 발음 교정 어려워

중국어의 성조와 권설음은 중요한 발음인데 정확히 발음하기가 어려운 편이다. 초기에 제대로 배워 놓지 않으면 굳어진 발음을 교정하기가 아주 어렵다.

단어나 표현은 익히면 되지만 발음은 꾸준히 소리 내서 연습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중국어 학습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꾸준함, 성실함, 그리고 암기다. 하루에 단 10분씩이라도 거르지 말고 매일매일 꾸준히 발음 연습을 해야 한다.

○ 신문 방송 등 중국어 매체와 친해지라

만화를 좋아한다면 중국어로 된 만화를 시리즈로 구입해 보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만화는 구어체가 많아 생활 속에서 자주 쓰이는 표현을 쉽고 재미있게 배울 수 있다.

신문 방송 잡지 영화 등 중국어로 되어 있는 매체들을 보고 들으면서 매일 중국어를 접해 보자. 중국 TV 뉴스를 보면 정확한 표준어 발음을 익힐 수 있다.

오태호 대교 차이홍중국어 팀장은 “시사, 경제, 정치 분야에 관심이 없다면 뉴스보다는 중국 영화를 적극 활용하면 좋다”고 말했다.

■ 국내 본격 시행 C·TEST는

실용중국어능력 인정시험인 C·TEST(Test of Practical Chinese)가 국내에서 본격적으로 시행된다.

C·TEST는 중국어능력시험(HSK)을 주관하는 베이징(北京)어언대 한어수평고시중심이 개발한 새로운 중국어 시험으로 ㈜현대영어사가 국내에 도입했다.

지난해 11월 중국과 일본에서 시작돼 2000여 명이 응시했다. 국내에서는 3월 18일 첫 시험이 실시됐다. 9월 16일과 12월 2일에 서울 부산 대구 대전 광주 울산 등에서 시험이 치러질 예정이다.

중국어가 모국어가 아닌 사람에 대한 중국어 구사능력을 평가하는 데 쓰이며 국제상거래, 무역환경에서의 중국어 숙련 정도를 평가한다.

시험은 초급(E, F)과 중고급(A∼D)으로 나뉘어 치러진다. 초급은 듣기, 문법과 독해 등 두 부분으로 나뉘며 9가지 유형으로 구성된 140문제를 115분 안에 풀어야 한다. 중고급은 듣기, 응용 등 두 부분으로 나뉘며 10가지 유형의 160문제를 140분 안에 풀어야 한다.

말하기 시험은 따로 신청해야 한다. 면접관 2명이 응시자를 평가한다. 전 과정이 녹화되며 최상위인 전문등급 응시자의 녹화 내용은 모두 재평가해 합격자에게만 등급 증서를 발급한다.

C·TEST 한국위원회 최기형 회장은 “C·TEST는 듣기평가 비중이 43%로 실제 언어능력 평가에 집중하고 있다”며 “자세한 성적표가 제공되기 때문에 시험 응시 이후의 중국어 학습에 많은 도움을 받을 수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응시료는 초급 3만6300원, 중고급은 4만8400원, 말하기는 7만7000원이다.

C·TEST 한국위원회 : www.c-test.or.kr

입 냄새 고민상담

입 냄새 고민상담
과학 ‘팍’ 도사 - H양 입 냄새 고민상담 [제 720 호/2008-02-15]

Q. 전 고민이 있어요. 좋아하는 친구가 있는데 저와 대화를 할 때마다 자꾸 고개를 옆으로 돌려요. 그 친구도 제게 호감이 있는 것 같은데 제 말에 집중을 하지 않는 것 같아 속이 상해요. 저를 무시하는 이 친구를 어쩌면 좋죠? (서울 용산에서 H양)

A. 구취제거제를 사용하거나 자주 이와 혀를 닦으세요. 그렇지 않으면 있던 호감도 떨어질 수 있습니다.

입 냄새는 삐져나온 코털과 비슷해요. 자신은 잘 모르지만 대화를 나누는 상대방은 쉽게 알아채죠. ‘비호감’의 단계를 넘어 혐오감을 줄 수도 있어요. 가장 큰 문제는 이를 알아차리더라도 그 자리에서 쉽게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죠. 그래서 미리 예방하는 방법을 추천해드리고 싶군요.

먼저 데이트는 오후가 좋습니다. 아침에 일어나면 입 안이 말라있는 경우가 많아요. 침은 입 속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는데 입이 말라 있으면 세균 활동이 왕성해지죠. 침은 세균을 씻어내고, 리소자임이나 락토페린 같은 성분이 들어있어 세균을 없애주기도 합니다. 입 속 세균 중 혐기성 세균은 단백질을 분해해 입 냄새의 원인이 되는 황화수소(H2S) 가스를 만드는 주범이죠.

전날 밤 양치질을 하지 않고 잠자리에 들었다면 입 냄새는 정말 최악일 것입니다. 정 믿지 못하시겠다면 손등에 침을 바른 뒤 냄새를 맡아보세요. 입 냄새가 심하면 침에서도 고약한 냄새가 납니다. 자신도 모르게 냄새를 맡고 고개를 돌려버렸다면 일단 물부터 한잔 드세요. 입안이 어느 정도 촉촉해지며 침 분비가 왕성해집니다. 그 뒤 양치질을 하면 입 냄새가 대부분 사라집니다. 이때 혀까지 깨끗하게 닦으세요.

입 냄새를 없애겠다고 입으로 숨을 쉬는 경우도 있는데 황화수소 가스가 빠져나가 잠깐은 효과가 있을지 몰라도 입 안이 마르기 때문에 입 냄새는 더욱 심해집니다. 특히 겨울에는 공기가 건조해 입 냄새가 더 심해질 수도 있어요.

데이트를 할 때 입 냄새가 걱정된다면 커피는 멀리하는 편이 좋아요. 꼭 드셔야겠다면 크림이나 우유를 넣지 않은 블랙커피나 아메리카노를 추천합니다. 커피는 약한 산성을 띄고 있습니다. 커피 특유의 시큼한 맛은 여기에서 비롯되죠. 그런데 입 속 세균은 약한 산성에서 활발해집니다. 만약 크림이나 우유를 섞은 커피를 마시면 활발해진 세균에 단백질이란 먹이 덩어리를 공급해주는 셈입니다.

간혹 아침에 나는 입 냄새를 없애기 위해 모닝커피를 드시는 분이 있는데 사실 별 효력이 없습니다. 오히려 역효과가 나죠. 밤새 입 안이 말라 세균이 많은 상태에서 영양분을 공급해준다면 입 속은 순식간에 황화수소 가스로 가득 차겠죠. 차라리 커피보다 물을 마시는 것이 입 냄새 제거에 효과가 있답니다. ‘모닝녹차’나 ‘모닝야채’도 좋아요. 녹차의 플라보노이드 성분이 입 냄새를 제거하고, 야채를 먹어도 입 냄새가 없어진답니다.

데이트를 할 때는 구강청정제도 가져가세요. 구강청정제에 있는 멘톨이나 페퍼민트 같은 향료 성분이 입 냄새를 가려줍니다. 또 일부 구강청정제에 섞인 알코올은 세균을 억제하는 효과도 있죠. 하지만 입 냄새를 없애겠다고 오랜 기간 구강청정제를 사용하면 위험해요. 입 속에는 입 냄새를 만드는 세균 외에도 구강 건강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세균이 있는데, 이 세균들이 사라지면 입안이 헐고 피가 나는 ‘진균증’에 걸릴 수도 있습니다.

이런 방법으로도 입 냄새가 사라지지 않으면 병원에 가보는 편이 좋습니다. 입 속 세균이 만드는 입 냄새 말고, 충치나 잇몸, 코, 목의 염증으로도 냄새가 나기 때문이죠. 입을 막고 코로 바람을 내뿜어도 입 냄새가 나면 코나 목의 염증 때문일 수 있습니다. 병원에 있는 구취측정기(halimeter)의 관에 바람을 불면 입 냄새가 어떤 부위에서 얼마나 나는지 알 수 있어 원인과 치료 방법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입 냄새가 심하다면 빨리 원인을 찾아 없애는 편이 건강에도 도움이 되고 인간관계에도 도움이 됩니다. 연인 관계에서는 필수지요. 달콤한 분위기에서 첫키스를 하다 남자친구가 당황할 수도 있어요. 웃을 일이 아니랍니다. 여배우 비비안 리가 영화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를 찍을 때 클라크 케이블의 입 냄새 때문에 키스신 도중 기절했다는 일화도 있으니까요. (글 :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

정약용에 대하여 (옮김)

정약용에 대하여 (옮김)

최근 정조의 일대기를 다룬 드라마 ‘이산’이 화제다. 드라마 중반까지는 정조가 즉위하는데 큰 도움을 준 홍국영의 활약이 두드러지게 그려졌다. 하지만 정조가 즉위한 뒤 가장 큰 활약을 하게 될 인물은 바로 다산(茶山)정약용(1762~1836)이다.

정약용은 정치와 경제의 부조리를 타파하고 서양 문물을 받아들이는데 앞장서 조선후기의 ‘르네상스 시대’를 활짝 열은 일등공신이다. 이산의 이병훈 PD가 “너무 완벽해서 오히려 재미없는 사람”이라고까지 평한 그의 업적을 통해 드라마 이산을 미리 살펴보자. 단, 스포일러(?)가 두려운 분은 읽지 마시길 바란다.

정약용은 정조의 ‘영재육성프로젝트’로 탄생한 인물이다. 정조는 즉위한 즉시 왕립 도서관이라 할 수 있는 ‘규장각’을 만들고 37세 이하의 관료를 뽑아 3년 동안 규장각에서 공부를 시키는 ‘초계문신제도’를 운영했다.

정약용은 1789년 치러진 식년시에 급제해 바로 초계문신에 뽑혔다. 정약용은 초계문신으로 선발된 첫 해 규장각에서 본 시험에서 5번이나 장원을 차지했다. 초계문신은 당파에 상관없이 실력으로 선발됐고, 매달 두 번씩 치르는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얻지 못하면 방출됐다. 노론 벽파가 장악한 조정에 ‘정조의 사람’을 키워 중용하려던 정조의 계책이라고 할까.

초계문신으로 뽑힌 해 정약용은 사도세자의 묘를 수원으로 이전하기 위해 한강에 놓을 배다리를 설계하라는 어명을 받는다. 당시 조선에 한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는 없었다. 배다리는 수십 척의 배를 강을 가로질러 사슬로 엮어 만든 임시 다리. 배 위에 가교를 건설해 마차와 말을 비롯한 수많은 인파가 편하고 신속하게 건널 수 있었다.

정약용은 뚝섬에 배다리를 놓아 사도세자의 유골을 옮기는데 성공했다. 그리고 이때 축적한 기술을 바탕으로 1795년 대규모 왕실의 행렬이 수원을 방문할 때 정약용은 공사기간을 대폭 단축해 노량진에 배다리를 놓는다. ‘원행을묘정리의궤’에는 이 배다리로 말 779필과 인원 1779명이 건넜다고 기록됐다.

정약용의 업적 중 가장 빛나는 것은 바로 수원 화성 축조다. 수원 화성은 1997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돼 그 가치를 인정받았다. 정약용은 수원 화성을 건설하기 위해 서양의 과학을 도입해 거중기를 만들고, 당시 최첨단 성곽기술을 수원 화성에 적용했다.

정약용이 거중기를 만들 때 참고한 책은 ‘기기도설’(器機圖說)이다. 기기도설은 명나라로 귀화해 등옥함이라는 이름을 얻은 스위스 과학자 요하네스 테렌츠가 지은 과학책이다. 서양 물리학의 기본 개념과 도르래의 원리를 이용한 각종 장치가 수록됐다. 12개의 도르래로 이뤄진 거중기를 이용하면 장정 한 사람이 240kg의 돌을 거뜬히 들 수 있었다.

화성 축조에는 거중기 외에도 많은 기계 장비가 사용됐다. 짐을 싣는 판이 항상 수평을 유지하는 ‘유형거’, 도르래와 물레를 하나씩 사용해 만든 작은 거중기 ‘녹로’, 소가 끄는 수레인 ‘대거’ ‘평거’ ‘발거’가 쓰였다. 거중기는 한 대만 쓰였지만 유형거는 11량, 녹로는 2개, 수레는 200량 넘게 쓰였다. 수원 화성의 공사 기간이 단축된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수원 화성은 기존의 성곽 체계를 탈피한 당시 최첨단 방어요새였다. 임진왜란이 끝난 뒤 성벽을 타넘던 전투가 화포로 성벽을 부수는 전투로 양상이 바뀌었다. 수원 화성은 화포 공격에도 끄떡없도록 설계됐다.

일단 높이가 낮아 화포 공격으로 하단이 일부 무너져도 성벽 전체의 무게를 버틸 수 있었고, 흙, 돌, 벽돌이 적재적소에 위치해 화포 공격으로 성곽이 무너지는 것을 방지했다. 화강암을 사용해 돌이 화포 공격에 쉽게 깨지는 단점을 보완했고, 돌 뒤에는 흙벽을 쌓아 충격으로 돌이 빠지는 문제를 방지했다.

하지만 정약용의 삶이 평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정약용은 천주교를 주로 신봉하는 남인에 속해 있었다. 그가 천주교도인지에 대해서는 논란이 있지만 노론 벽파는 이 일을 구실 삼아 정약용을 끊임없이 공격했다.

정약용이 계속 공격을 받자 정조는 정약용을 황해도 곡산 부사로 발령한다. 잠시 조정을 떠나 백성을 직접 돌보게 하려는 생각이었다. 과거 천연두로 자식 3명을 잃었던 정약용은 곡산 부사로 일하며 천연두 치료방법을 연구해 ‘마과회통’을 썼다.

조정의 당파 싸움을 피해 고향에 내려가 있던 정약용은 정조가 승하한 뒤 노론 벽파의 공격을 받아 전라도 강진으로 유배된다. 그는 그곳에서 ‘목민심서’ ‘아방강역고’ ‘경세유포’ ‘흠흠신서’ 등 500여 권의 책을 썼다.

특히 흠흠신서에는 과학적 부검법이 나온다. 정약용은 “독살을 밝히려면 사체에 은침을 꽂아 색변화를 살펴보거나 사체의 입에 넣어둔 밥을 닭에게 먹여 생사 여부를 관찰한다. 혈액이 응고하는 현상과 검상의 깊이나 방향을 분석해 사건 당시 상황을 유추할 수 있다”고 흠흠신서에 밝혔다.

정조에게 받은 사랑을 백성에게 베푼 정약용. 그는 1818년 18년에 걸친 유배가 끝난 뒤에도 고향에 돌아와 학문 연구를 하다 75세의 나이로 숨을 거둔다. 그가 저술한 책의 내용이 정치에 그대로 반영됐다면 조선시대 백성은 좀 더 살기 좋아졌을까. 어쩌면 백성을 사랑한 정약용은 지금 가장 필요한 인물일지 모른다. (글 : 전동혁 과학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