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9월 9일 수요일

폭탄주에 관한 오해 5가지

폭탄주에 관한 오해 5가지

폭탄주 관련 시리즈 기사가 나가자 각계의 반응도 뜨겁다. 음주를 조장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격려의 전화와 메일이 많은 걸 보면 아직까지 폭탄주는 명실공이 우리사회의 주법으로 자리 잡은 것 같다.

경기불황으로 주머니 사정이 안 좋은 관계로 소폭(소주+맥주)이 ‘엄연한 한국 문화’로 자리 잡고 최근에는 외국인들도 한국의 폭탄주 문화를 배워가고 있다고 한다. 오늘은 폭탄주에 관해서 오해하고 있는 5가지를 정리해 본다. 폭탄주에 대한 오해와 진실을 통해 건강한 음주문화가 정착되길 바란다. 특히 애주가들에게 많은 참고가 되었으면 한다.

   

1.폭탄주는 군사 문화의 잔재다? 

폭탄주시리즈 중 ‘폭탄주의 역사’에서도 다뤘지만 한국 폭탄주의 유래는 당시 춘천지검장으로 있던 박희태 한나라당 대표가 원조라는 게 정설이다.

한국의 폭탄주는 1983년 박희태 춘천지검장를 비롯하여 강원도지사, 안기부 춘천분실장, 2군단 보안부대장, 강원도 경찰국장, 강원일보사장, 강원 MBC사장 등이 참석한 춘천기관장회의에서 당시 권복경 강원도경찰국장이 "옛날에 마셔본 적이 있는 술이 있는데 참 맛이 좋더라."고 제의해 폭탄주를 마시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즉 맥주잔에 양주잔을 떨어뜨린 칵테일이었다. 

박 대표는 당시 기관장회의에서는 '화합주'라고 했다가 강원도에 오는 손님들에게는 '강원도 특산주'로 권했다고 한다. 얼핏 권 국장의 제안은 우연인 것 같지만 그 배경엔 무지막지한 군대식 음주문화에 대한 두려움과 염증이 자리 잡고 있었다.

박 대표는 “5공 초기인 당시는 군인이 모든 것을 지배하는 세상이었어요. 음주문화도 군인들처럼 양주를 맥주잔에 따라 돌리는 게 유행이었는데 기관장들이 몇 차례 그렇게 먹고는 ‘아이고 못살겠다’ 한 거죠.” 그 과격한 이미지와 달리 폭탄주는 오히려 군대식 음주문화의 대안으로 양주를 희석시킬 목적으로 탄생했다는 설명이다.

   
“그때 모임에 참석했던 한 부대장이 군대에도 이를 퍼뜨렸고 다른 분들 역시 장소를 옮기며 폭탄주를 전파했다”고 말했다.

이후 이들 기관장들은 각각 강원도에 출장 오는 인사들에게 폭탄주를 가르치고 나중에 부산 등 다른 지방으로 전근가면서 폭탄주를 전국에 전파했다. 박 대표는 춘천을 떠나 대전지검장으로 와서 역시 대전 법조계 등에 폭탄주를 퍼뜨려 대전을 폭탄주문화의 메카로 만들었다.

하지만 폭탄주 술자리에 가면 아직도 폭탄주유래에 대한 일부 주당들의 반론이 있다. 1983년 이전에도 폭탄주가 있었다고 주장한다. 그러나 1980년대 초 이전에 폭탄주가 있었다는 것은 어디까지나 기억과 전언에 불과할 뿐 이를 뒷받침할 만한 또 다른 인물이나 사료는 유감스럽게도 없다.

한화그룹에서 1950년대 중반 '다이너마이트주'를 마신 것으로 알고 있지만 그룹의 공식기록 어디에도 이를 증명할 자료는 없다. 군대에서 1960-70년대에도 폭탄주를 마셨다는 사람이 있다. 그러나 김진선 전 수방사령관은 1988년 이전에 폭탄주를 마셔본 적이 없다고 회고했다. 그는 대단한 주당으로 노태우 전 대통령이 9공수여단장이던 1970년대부터 '술상무'였는데도 폭탄주 첫 시음은 훨씬 뒤라고 말했다.

역시 주당으로 유명한 박정희 전 대통령도 양주와 맥주를 섞은 폭탄주를 마시지는 않았다. 주전자에 얼음을 넣고 양주를 콸콸 부어 주전자에서 잔으로 따라 마시는 한국적인 칵테일을 즐겼다. 또 막걸리에 맥주를 섞은 이른바 '삐따꾸주'를 즐겼지만 폭탄주를 제조해 마시지는 않았다. 따라서 정형성과 지속성 그리고 참석자들의 사회적 지명도와 확산에 대한 기여도 등을 감안하면 지금까지 박희태 대표와 당시 춘천기관장들이 폭탄주의 원조라는 것을 부인할 증거는 없다..

2.폭탄주는 외국 술이다?

이 말이 틀린 것은 아니다. '폭탄주 유래'에서도 언급했지만 1900년대 미국에서는 부두나 탄광 노동자들이 맥주에 위스키를 섞어 마셨다고 한다. ‘몸을 끓어오르게 하는 술’이라는 뜻에서 ‘Boiler Maker’라고 불리는 일종의 칵테일이었다. 영화 ‘흐르는 강물처럼’에서 맥주에 위스키 잔을 떨어뜨려 마시는 모습을 보고 ‘야, 저 친구들도 폭탄주 먹네’ 하며 웃으신 주당들도 꽤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 폭탄주는 한국 술이라고 봐야 할 것 같다. 폭탄주를 미국 술이라고 할 수 없는 게 미국에서 Boiler Maker라는 칵테일은 그리 잘 알려진 술이 아니다. 또 일부에서는 제정 러시아 때 시베리아로 유형간 벌목 노동자들이 추위를 이기려고 보드카와 맥주를 섞어 마신 것을 폭탄주의 기원으로 보기도 한다. 결국 폭탄주의 ‘지적재산권’이 누구에게 있는지 모호하다는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폭탄주를 하나의 문화로 만들고 이름이 나게 만든 사람들은 단연 한국인이다. 그리고 한국식 폭탄주가 제조되기 시작할 때 미국 등 외국의 제조법을 표절했던 것도 아니다. 이제는 오히려 한국을 찾거나 한국인과 사업을 하는 외국인들 사이에서 ‘대표적인 한국식 음주법’이라고 해서 폭탄주가 이름 높다.

그래서 영어로도 ‘Boiler Maker’라고 부르는 대신 폭탄주를 직역한 ‘Bomb Shot’으로 통하는 경우가 많다. 화투가 일본에서 건너왔지만 고스톱을 일본문화라고 단정 지어서 무조건 배격할 수 없는 것처럼 미우나 고우나 폭탄주는 이제 한국문화의 하나가 됐다.

3.폭탄주는 엄청난 독주다?

폭탄주의 알코올함량도 잘못 알려진 대표적 사례다. 특히 방송 뉴스를 중심으로 ‘폭탄주의 알콜도수는20%’라는 식의 보도가 이어지면서 많은 분들이 그렇게 알고 있다. 어떤 술 전문가도 “40% 짜리 위스키와 4~5%의 맥주를 섞어 먹으면 19%쯤의 알콜 함량이 되니 거의 소주를 맥주 글라스에 따라 마시는 셈”이라는 글을 본적 있다.

그런데 이 분석은 틀렸다. 폭탄주시리즈 기사를 쓰면서 '폭탄주 알코올 도수' 편에서도 언급했지만 40% 짜리 위스키와 4.5% 짜리 맥주를 섞는 건 맞지만 들어가는 맥주의 양이 훨씬 많기 때문에 대체로 알콜 함량 10~11% 정도의 칵테일이 된다. 소주처럼 독한 술을 맥주 컵에 마시는 것은 아니고 백세주 정도의 술을 한 컵 마시는 셈이다.

특히 요사이 유행처럼 양주를 적게 타고 또 맥주잔의 반 정도만 채우는 폭탄주의 경우, 알코올함량 10% 미만의 술을 반 글라스 정도 마시는 격이다. 옛날에는 소주하면 25%였지만 요즘은 19%짜리가 대부분이라 도수가 더 내려간다.

술 마실 때도 정신력이 중요한데  폭탄주 1잔 마실 때마다 ‘야, 이거 내가 소주 한 컵을 들이키네’ 이렇게 오해하면 주눅이 들어서라도 일찍 취할 수 있다. 그러니 폭탄주를 불가피하게 먹더라도 너무 위축되시지 말고 즐겁게 마시면 된다.

4.폭탄주는 소탕되거나 추방될 수 있다?

   

96년 보건복지부의 폭탄주 추방운동과 2006년 박진 한나라랑 의원의 '폭탄주 소탕클럽'(약칭 폭소클럽) 창립 등 폭탄주를 근절하자는 움직임도 많았다. 폭탄주를 즐기는 것으로 알려진 검찰이나 관가, 대기업, 증권가 등에서도 심심치 않게 ‘폭탄주를 추방하자’는 최고위층의 강한 권고가 발표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 실패로 끝났다. 조직문화가 강한 곳일수록 폭탄주 문화는 시들지 않고 이어져 오고 있고 지금은 일반인 사이에서도 폭발적인 사랑을 받고 있다.

폭탄주시리즈 '폭탄주사건'에서 다시 언급하겠지만 대한민국 역사상 폭탄주 때문에 벌어진 가장 심각한 대형 사고는 아마 지난 99년 6월7일 발생한 ‘조폐공사 파업유도’ 발언 사건이다.

당시 진형구 대검공안부장이 낮술로 폭탄주를 하고 취한 김에 ‘파업을 사실상 우리가 유도했다’고 기자에게 이야기하는 바람에 한바탕 난리가 났었던 사건이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당시에 진형구 검사장이 기자들과 낮술을 했다고 기억하는데 사실 그날 낮 술자리는 대검간부들의 오찬이었다. 당시 검찰총장인 박순용씨가 좌장이었던 이 자리에서는 위스키 알잔 8~10잔이 돌았고 막판에 폭탄주 3잔이 돌았다고 한다.

이 사건으로 진형구 검사장은 물론, 김태정 당시 법무장관까지 옷을 벗어야 했던 검찰 최대 비극 중 하나였다. 이후 김종빈 검찰총장이 강력하게 ‘검사끼리 폭탄주 먹지 마라’, ‘폭탄주는 개별적 융통성을 허용하지 않는 무식한 조직문화의 상징’이라고 경고했지만 검찰청 주변에서 폭탄주는 사라지지 않았다.

그만큼 폭탄주의 뿌리는 이미 깊이 내려 있었다. 특히 술잔이 상석으로 밖에 몰릴 수 없는 좌장 입장에서는 폭탄주를 돌려야 술을 덜 마신다는 점도 고려 대상이다 술자리의 좌장들은 만약 폭탄주가 없었다면 전통적인 한국식 잔 주고받기를 하느라 훨씬 많은 술을 마셔야 했을 것이다.

이를테면 6명이 하는 회식에서 좌장은 1대5 비율로 술을 많이 마셔야 한다. 그러니 높은 분일수록 폭탄주 식 음주법에 대한 유혹을 이겨내기 힘들 것이다. 

5.폭탄주는 만악(萬惡)의 근원이다?

물론 폭탄주를 마시고 술에 취해서 실수도 많이 생기고 또 건강에 해악을 끼치는 것도 맞다. 하지만 폭탄주의 긍정적인 측면도 분명히 있다. 한국 반도체 신화의 주역이었던 황창규 삼성전자 사장은 “한국이 단기간에 반도체 전쟁에서 일본에 이길 수 있었던 원인으로 팀워크를 살리는 폭탄주를 뺄 수 없다”고 말했다.

퇴근 길에 폭탄주를 마시면서 연구실에서 쌓인 스트레스를 토해내고 성공과 실패 사례를 얘기하다 보니 팀워크가 살고 연구 성과도 공유하게 됐다고 한다. 농담삼아 한 말이지만 빈말 만도 아닌 듯하다.

폭탄주 시리즈 중 '폭탄주가 좋은 9가지 이유'를 설명했지만 어차피 한국에서 폭탄주라는 문화를 일거에 소탕하거나 추방할 수 없다면 슬기롭게 잘 이용하자는 것이다. 하지만 폭탄주에 긍정적인 면이 많으니 많이 마시라고 장려할 수도 없고, 폐단이 많으니 없애자고 캠페인을 할 수도 없고, 이놈의 폭탄주를 어찌할 것인가.

미국에서 가장 아카데믹한 정치인이라는 평가를 받았던 대니얼 패트릭 모이니헌 교수는 “가장 중요한 진실은, 사회를 성공시키는 요인은 정치가 아니라 문화다”라고 말하고 있다.

문화는 하루아침에 기계를 돌려가며 만드는 것이 아니다. 오랜 기간 다져지고 걸러져서 정착이 되는 것이다. 또한 사회적으로 문제가 있다고 해서 어느 날 갑자기 버릴 수 있는 것도 아니다.

폭탄주도 마찬가지 아닐까. 그것 또한 우리 문화의 일부라고 한다면 나름 우리 스스로가 감당할 수밖에 없다고 본다. 오늘 이런 뒷이야기를 나누면서 천천히 한잔 즐기고 과음하지 말고 말자. 술이 원수가 아니라, 폭탄주가 원수가 아니라 바로 과음이 사람의 명예와 건강을 앗아가는 원수다.

 

 

출처 :  디트 News 24 - http://www.dtnews24.com/news/articleView.html?idxno=6767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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